대만에 도착함과 동시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공항에서 잠시 무선랜을 사용할 수 있었을 때, 구글 지도로 숙소 위치를 찾아보았었다. 무선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잠깐 스쳐 지나가듯 간신히 본 것이었지만 대략의 위치는 파악하고 있었다. 타이페이역 광장 맞은편, 두 블럭 안쪽 골목. 큰 쇼핑몰 뒤편. 숙소를 예약하면서 예약 바우처와 안내문을 캡쳐해 두었었기에 정확한 주소도 가지고 있었다.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꼭 필요한 만큼은 가지고,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심야 시간이라 역은 닫혀 있었고 주변에 불이 켜진 건물들도 찾기 힘들었다. 사실 그때까지 내게 새벽 세 시라는 시간은 절대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니었다. 내가 살던 고향 서울에서도 말이다. 엽서를 팔아서 여행을 지속해보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도 그동안 내가 지냈던 Comfort Zone 밖으로 나온 것이었지만, 나오고 나니 정말로 한 순간 한 순간이 모두 다 처음 경험하는 차가운 현실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내게 주어진 모든 미션은, 이전엔 맞서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모든 발걸음이 최초였고, 내 한계점을 무너뜨리는 성장의 신호였다. 비 오는 날 밤, 새벽 세 시.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생전 처음 와보는 도시에서, 대략의 위치와 별 도움 안 되는 중국어 주소만 가지고 숙소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생각보다 담담했던 것 같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서일까, 아니면 내 감각과 근육의 모든 능력을 ‘숙소를 찾는 것’ 하나에만 집중해서였을까. 빗방울은 계속 떨어졌고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공항에서 느꼈던 그 긴장과 두려움은 더 이상 내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처했던 상황 중 가장 애처로운 상황이었지만, 난 담담하게 비를 맞으며 걷고 있었고 20분 만에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숙소는 타이페이역 6번 출구에서 1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지하보도를 이용할 수 있었다면 참 쉬웠을 것인데, 밤이라 폐쇄된 관계로 저 멀리 있는 육교를 이용해야 했던 탓에 오래 걸렸다. 숙소는 내가 대만에 가기 직전에 대만을 여행했던 내 지인의 추천으로 선택하게 됐다. 24시간 체크인이 가능한 곳인 데다가, 그 친구가 무급스탭으로 일했던 곳이라 다음 스탭으로 날 추천해 주기도 했거든. 덕분에 가장 큰 걸림돌 두 가지를 한방에 해결하게 됐다.

숙소 건물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사실 가장 겁나는 순간은 여기서부터였다. 주소에는 4층이라고 쓰여 있는데 4층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는 층이었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자 날 가로막고 있는 벽 하나만 보였다. 사실 공항 로비에 처음 나왔을 때보다  이때가 더 당황스러웠다. 붙어있는 층별 안내문에는 4-6층이 같은 호스텔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5층을 눌렀지만 그곳 역시 상황은 같았다. 다시 6층을 눌렀고, 그제야 프런트 데스크가 있는 층에 도착했다.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나를 반가운 인사로 맞아주는 스탭들. 나는 잠시 숨을 돌리고 예약 바우처를 보여 줬다.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그런데 내 예약 바우처를 받아 든 스탭들이 당황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더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그러더니 내게 설명(다행히 영어를 다들 잘 했다)을 해 준다. 같은 호스텔의 체인점이 타이페이역과 시먼딩에 있는데, 난 예약은 시먼딩으로 하고 타이페이역으로 온 거라고. 아.. 이제야 엘리베이터 당황사건의 전말이 풀렸다. 왜 4층과 5층이 막힌 벽이었는지. 예약은 잘 해 놓고, 체인점이 두 개라는 사실은 요만큼도 생각하지 못한 채로 구글맵이 알려 준 위치로 달려온 거다. “H***호스텔 타이페이” 라고 검색했으니 구글 신께선 당연히 타이페이역 지점을 알려준 거고. 긴장한 데다 중국어는 읽지를 못 하니 예약 바우처의 주소와 구글로 찾은 주소가 다르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 하고 말이다. 정말 이전보다 더 심각한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 깨어난 건 오늘 밤은 이쪽으로 예약을 옮겨 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정말 대만  첫날은 들었다 놨다의 끝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간신히 남은 정신을 부여잡고

침대로 기어 들어가 옷을 갈아입자마자 그렇게 잠에 들었다.

이제는 스물한 살 꼬맹이가 쓰는

스무 살 꼬맹이의 45개국 엽서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