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캐치잇플레이에 입사하는 순간부터, 퇴사는 예정된 일이었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입사는 경험치를 축적하기 위한 선택이었고, 적당한 시기에 다시 독립해서 내 사업을 재개할 생각이었으니까. 퇴사를 할 것이라는 사실만은 명확했다. 다만, 퇴사의 타이밍을 잡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입사 시점부터 ‘이럴 때 퇴사해야겠다’라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있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심 가지고 있던 생각은 이랬다.

퇴사해야 할 타이밍이 온다면, 내가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기의 이유로 퇴사를 한다. 사람에 치여서, 일에 지쳐셔. 혹은 더 늦출 수 없는 꿈이 있거나, 이직, 혹은 이른 은퇴를 위해서. 나의 경우도 비슷했다. 배움과 경험을 위해 깎아서 들어간 회사의 급여가 내심 아쉬웠고, 또, 결국엔 결정적인 트리거가 있었다. 

 

사업을 했던 사람에게, 월급 생활은 아쉬울 수밖에

입사 전에 1인 사업체를 운영했을 때, 기록했던 월 최고 매출은 천 이백만원 정도였다. 아마 천만원 단위의 매출을 내는 사업을 했거나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이러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겐 매달 수백 만원의 월급을 가져다줘도, 묘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건 액수의 문제가 아니다. 고정된 급여라는 구조 자체가 주는 아쉬움이다. 매출을 매달 늘려갈 궁리를 했던 사람이, 성과급을 제외하면 매달 고정된 급여가 들어오는 환경에 들어가면,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결과가 고정된 게임에 뛰어드는 느낌을 받는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짜릿한 매출 상승의 맛에 살아가던 사람이, 고정된 급여를 받으며 살다 보면 내심, 지루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사업은 기본적으로 일을 잘 하면 내게 보상이 주어지고, 일을 못 하면 내게 책임이 주어지는 환경이다. 나는 그게 참 좋았다. 그리고, 업무의 범위나 생각의 범위에 제한이 없다는 것도 즐거웠다. 큰 자율과 큰 책임에, 큰 보상이 따르는 환경. 모두가 알다시피 회사생활은 그렇지 않다. 일부 제한된 자율, 직급에 따라 정해지는 책임과 보상. 업다운이 많지 않고, 안정(정체로 느껴지기도 하는)을 추구하는 환경이니까. 사실은 급여의 액수보다도  회사 소속으로 있으면서 필연적으로 좁아지는 운신의 폭이 아쉬웠다. 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가 생길 때 자유롭게 뛰어들지 못하는 것도 아쉬웠다. 또한, 내가 잘 성장하고있는지를 직접적으로 느끼기 어려운 것도 한 몫 했다. 사업을 할 때엔 수입이 늘어나고, 담당자로 만나는 사람들의 직급이 올라갈 때, 내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지만, 회사생활은 그렇지 못했다. 회사생활이 구조적으로 아쉬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트리거가 있었다.

2020년이 시작되면서, 캐치잇플레이는 외부의 마케팅 파트너들과 협업을 시작했다. 광고를 대행해 준 곳도 있었고, 고객의 의견과 광고의 성과를 분석해 준 팀도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 영상 제작을 담당하는 외주 프로젝트도 시작되었다. 내가 매니지먼트 업무로 전환되면서 함께 일어난 변화였다. 제한된 내부의 인원으로 모든 일을 잘 할 수는 없었으니, 이런 회사의 결정은 매우 합당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에서 터졌다.

인터뷰 영상 제작을 맡은 팀과 함께 일하기 위해, 내가 쌓아올린 캐치잇 인터뷰 마케팅 소재 작성에 대한 워크플로우, 가이드라인, 노하우를 매뉴얼로 정리했다. 4편에서도 언급했듯, 외부 팀의 역할은 내가 만든 설계도대로 공장을 돌려서 제품을 찍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터뷰 컨텐츠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인터뷰어의 역할이었다. 인터뷰어는 1시간에서 길게는 두시간 정도의 밀도있는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터뷰이가 편안한 상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도록 이끌고, 감정과 상태를 잘 헤아려 배려하고, 상대에게 맞는 다양한 화법과 질문 방법을 센스로든 훈련으로든 체득하고 있어야 했다. 이런 어려운 미션을 받은 작업자는 A. 외부 마케팅 서포트 팀의 팀장이 실력 좋은 인원이라며 데려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A는 애초에 이렇게 정교한 업무를 맡을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촬영 전 통화에서, 매니저인 나의 촬영 참관을 극구 거부하는 묘한 태도부터가 불안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틱틱거리고 짜증섞인 성급한 말투로 질문하는 A. 또한 그런 성급한 말투와 조화를 이루는 부드럽지 못한 몸짓까지. 게다가, 오디오에 잡히기 때문에 추임새를 넣으면 안 된다는 촬영 매뉴얼의 강조사항도 무시했다. 첫 촬영이 끝나고 사무실에 돌아와, A가 제대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내 불안을 디렉터와 선배 팀원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업계에서 유명한” 외부 마케팅팀의 팀장이 데려온 작업자를 바로 자르는 건 힘든 일이었다.

사실, A의 실수나 미숙함은 용납할 수 있었다. 다만, 용납하지 못했던 건, 작업자로서의 매우 불성실한 태도였다. 프로답지 못했다. 아니, 인턴이라도 이렇게 일하면 안 되었다.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 여러 개를 줄글로 보내면, 두 세개 정도 본인이 답변하거나 수정하기 쉬운 부분에서만 대답하는 정말 어이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A의 태도. 느낌과 방향을 이야기하는 친근한 대화같은 피드백이 무시당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은 번호붙여 정리한 항목들과 지시사항으로 변화해 갔다. 게다가, A의 근무 태도는 점점 태만해져 갔다. 처음에는 매뉴얼에 나온 대로 4~50분 정도의 소스를 받아오다가, 회차가 거듭할수록 시간이 줄어들어, 23분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A가 2번 인터뷰이에 대한 기획안을 쓰면서, 인터뷰이 1의 기획안 양식을 복사 붙여넣기하며 기존 내용을 제대로 지우지 않았다. 그렇게 2번 인터뷰이 기획안에 1번의 내용이 섞여서, 인물의 프로필에 대한 큰 혼동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본인: 1번 인물이 호주 여행 에피소드를 말씀하셨는데, 2번 인터뷰이도 호주에 다녀오셨나보네요?

A: 호주 다녀오신 분은 1번 인터뷰이입니다!

본인: 2번 인터뷰이 기획안에 1번 인터뷰이 내용이 섞여있어서 그렇게 파악했습니다. A가 인터뷰이 컨택업무를 모두 진행하시기 때문에, 저희는 기획안 내용으로 인물을 파악할 수밖에 없어요. 오타라면 기획안 수정본을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전에도 촬영 일정안내에 있어, 날짜는 맞고 요일이 틀렸다든지 하는 실수가 여러 번 있었는데, 앞으로는 신경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퇴사의 트리거가 되었던 A와 나의 대화.
나의 커뮤니케이션이 부적절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 스스로 해 주시길 바란다.

A는 나와의 이런 대화를 본인이 갑질을 당해서, 이런 취급을 받으며 더이상 일을 못 하겠다는 취지로 자신의 팀장에게 보고했고, 우리 팀 CEO와 디렉터를 통해 이 내용이 내게 내려왔다. 본인이 복붙을 잘못해서 오타를 냈다면 미안하다고 했어야 하고, 돈을 받고 한 일에 실수를 계속 저질렀다면 또한 미안하다고 했어야 한다. 적반하장의 극치. 일을 엉망으로 하는 것도 열불이 터졌는데, 되도 않는 정치질까지 해버리는 A. 차라리 내가 A의 면전에 일 똑바로 하라고 쌍욕이라도 날려서, 멘탈을 탈탈 부숴놓기라도 했다면 답답하지라도 않았을 거다. 다음날부터 디렉터와의 미팅이 이어졌다. 우리 팀 디렉터는 나를 회사를 대표하는 연락 대리인으로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다. 회사가 지향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 아니었다는 이유였다.

그래, 캐치잇플레이는 매너있고 착하고 좋은 회사였다. 그리고, 나는 하청 업체 담당자가 업무를 이리도 엉망(개판)으로 하는데, 조곤조곤 설득할 능력을 가진 위인은 아니었다.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이렇게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외부 작업자가 또 생긴다면, 나는 똑같이 행동할 거라고. 나는 내가 책임을 맡은 업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백 번 옳은 일을 했고,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그 때는 회사와 내가 각자의 길로 흩어지는 게 맞다고 본다고. 퇴사하겠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알아듣도록 전달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퇴사 결정, 그 후

퇴사를 하며 회사가 내게 제안한 조건은, 향후 6개월간 기존 급여를 유지한 상태로 원격으로 프리랜서 근무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든지 독립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었기에, 내게 아쉬울 건 없었다. 아쉬운 쪽은 오히려 회사였을 것이다. 자사 광고영상 제작의 모든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내가 곧바로 퇴사하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웠을 테니까. 내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받아들이지 않고 바로 퇴직하는 것도 방법이었을 터. 그러나, 좁힐 수 없었던 차이 하나를 빼면 회사와 나는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캐치잇 잉글리시 앱은 열정을 가지고 함께 키워 온 프로젝트였으며, 팀원 모두들 내가 존경하고 애정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부드러운 인수인계를 위해 책임있게 행동하는 것이 옳았다. 마지막 미팅에서, 우리 팀 디렉터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가 쟈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캐치잇이 누구나 알 만한 큰 회사로 성장해서, 쟈니가 캐치잇플레이의 성장기에 마케터로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빛나는 커리어를 가지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스물 다섯, 6월 말. 내 삶의 큰 챕터 하나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개인으로서 절대 경험해보지 못했을 일들을 겪게 해주었고, 만나기 어려웠을 사람들과 소통하게 도와주었으며, 또한, 앞으로 내 자산이 될 많은 실적과 공을 쌓아 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던 캐치잇플레이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퇴사일기를 마치며

퇴사 후 꽉 채운 3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 나는 퇴사 이야기를 쓴다. 퇴사 직후부터 글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저런 감정들이 삭 가라앉고 생각이 정리될 타이밍을 기다렸다. 퇴사의 트리거를 제공한 A에게 사실은 묘한 고마움이 있다. 덕분에 퇴사를 하고 다시 사업을 하며, 내가 아쉬워했던 모든 것들이 다 해결되었으니까 말이다. 수입은 말 그대로 몇 배가 늘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모두 뛰어들 수 있고, 열심히 마무리한 일의 공로가 온전히 나에게 돌아온다. 있는 힘껏 눌려있다, 탕 하고 튕겨나온 용수철처럼 하늘 높이 튀어오르고 있다.

다시 사업가가 된 나. 관악에 새롭게 터를 잡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능동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참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고, 또 감사하다. 다시 회사에 들어갈 일이 있을 것 같냐고 묻는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고 말할 거다. 그만큼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스물 다섯의 한가운데 서서, 한 챕터를 닫고, 새 챕터를 열었다.

 

김재일

캐치잇플레이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2018.12. ~2020.06.

드림스토리 미디어 그룹 대표
2020.06~

 

 

스타트업 마케터의 퇴사일기
01 내가 입사를 결심한 이유
02 직함을 내려놓기
03 영어교육 서비스의 광고 트렌드를 이끌다
04 매니저로 가는 길

 

 Johnny Kim 김재일
안녕하세요, 크리에이티브 마케터 김재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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