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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습관처럼 스캔하던 중고장터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올라왔다. “128기가 SSD, 3만 원에 팝니다.” 제품 모델명을 검색해보니 피노컴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기업의 신뢰 안 가는 제품이었다. 아참, 모델명은 P70s. 제조사인 피노컴은 공식적 스펙시트상에 Read와 Write 모두 400MB/s를 훌쩍 넘긴다고 되도 않는 뻥을 쳐 놓기는 했지만, 몇몇 블로거의 리뷰를 보니 사실은 간신히 70MB/s를 찍는 Write 속도와 250MB/s근처에서 리밋이 걸리는 Read 속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SATA3의 6Gbps 대역폭도 모자라서 PCI-E기반의 NVMe로 넘어가는 판국에, SATA2의 대역폭으로도 입출력을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는 SSD라니… (Write 속도는 SATA 1으로도 커버가 가능한 놀라운 스펙!!) 아마 SSD 자체가 아니라 Cache에 데이터를 쓸 때의 순간속도를 쓰기/읽기 속도로 과장해서 광고하는 것 같다. 아니 좀 억지이긴 하지만, 쓰기 속도가 70MB/s라서 모델명이 P70s인지도…

뭐, 연비든 스피커 출력이든 스펙시트에 뻥을 쳐 놓는 건 제조업계 전반에 만연한 관행이니 그렇다 치고, 일단 이 3만 원이라는 가격에 혹해서 판매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3만 원짜리 SSD라니! 꽤나 괜찮은, 잘 팔릴듯한 글감이지 않은가. 또, 성능도 성능이거니와 그리 믿음직스럽지도 않은 SSD이기는 하지만, 저장장치는 혼자 죽으면 죽었지 다른 부품들을 끌고 요단강을 건너가지는 않으며 어차피 중요한 데이터를 넣어두지도 않는 서브 맥북에 넣어놓고 편하게 쓰기엔 적당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아, 참. 난 어쩌다보니 맥북을 두 대나 쓰게 됐다. 관련 글- 익숙함과 새로움. 그 중간에 서다

신 맥북을 들인 이후로 서브 맥북의 저장장치를 HDD로 다운그레이드 시켜 놨더니 꽤나 답답하게 돌아가는 속도 때문에 조금은 불편했는데(여전히 글 쓸 때 자주 사용한다) 마침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읽기 속도가 SSD 치고는 실망스러운 250MB/s 정도라고 해도 5400RPM HDD의 네 배는 되기 때문이다. 글이 올라온 지 두 시간도 안 되었던 시점이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미 예약되었다는 말. 아 역시 가격 앞에 장사 없구나.. 하며 포기했는데 두어 시간 후에 다시 문자가 온다. 거래 불발되었는데 혹시 사실래요? 문자를 보자마자 OK사인을 줬다. 이런 좋은 소잿거리는 놓치기 아깝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직거래를 하고, 3만 원짜리 장난감을 집에 데려왔다.

철판을 대충 가공해 만든 듯한 케이싱과, 저렴한 느낌을 더해주는 디자인에 유광으로 마감된 커다란 스티커까지. 고급형 라인인 삼성의 840EVO와 비교해보면 정말 말 그대로 장난감 같다. 이게 모형인가 진짜인가 의심될 정도로 말이다. 어차피 무상 서비스를 받을 일이 없을 거기는 하지만 괜히 3만 원 날려먹으면 기분이 굉장히 별로일 것 같아 내부를 뜯어보지는 않았다. 뜯어보면 성능이 괜히 더 의심스러울 것 같아 안 한 것도 있지만 말이다. 저장장치에 외관이 중요한 요인은 아니지만, 역시 딱 그 가격에 그 외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외장하드 케이스에서 750GB 하드디스크를 분리하고 그 자리에 SSD를 장착한 후 구 맥북에 연결했다. 디스크 유틸리티를 이용해 SSD는 JHFS로 포맷했고, 부팅 디스크로 쓰는 320GB짜리 하드디스크의 OSX파티션은 가능한 한 작게 축소했다. 그 후에 복구모드로 부팅해 OSX 파티션 전체를 이미지로 백업하고 전원을 끈 뒤 하판을 분리해서 HDD와 SSD를 맞바꿨다. 구 맥북에 SSD를 장착한 상태로 복구모드에 다시 돌입, 이제는 외장하드 케이스에 들어간 320GB HDD에서 백업된 이미지를 불러와 복구를 진행했다. 용량은 60GB 정도였고, 복구에는 4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복구가 완료된 후에는 전원을 끄고 SMC와 NVRAM(PRAM) 초기화를 진행했다. 파티션 자체를 그대로 긁어다가 복구한 것이기는 하지만, 혹시모를 오류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빙~ 하는 소리와 함께 부팅되는 mac OS. 하드웨어 변화를 감지해서 그랬는지, 첫 부팅은 생각보다 느렸다. 성공적으로 부팅한 이후 두어 번 재부팅을 시도하니 그제야 제 속도가 나온다. 부팅 속도 자체는 삼성의 SSD를 사용할 때와 비슷하게 나오는 느낌이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10초 정도면 암호 입력창이 뜬다. HDD를 사용했을 땐 로그인하고 몇 가지의 시작 프로그램들이 다 실행되고 CPU 점유율이 떨어질 때까지 2~3분은 족히 걸렸었는데, 이제는 로그인하고 30초 이내에 모든 것이 안정된 상태로 구동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돌려 보니 결과는 역시나. 쓰기 속도가 80MB/s를 넘지 못하는 데다, 그 속도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심하게는 30MB/s 수준까지 떨어지며 요동친다. 다행히 읽기 속도는 안정적으로 250MB/s 내외에 머물렀다. 쓰기 성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아무리 저가형이라지만,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 거다 싶어서), 복구모드로 재부팅한 뒤 OS X의 시스템 보호모드를 끄고 (csrutil disable –withoutdebug) 재부팅한 뒤 TRIM을 활성화(sudo trimforce enable)시켰다. 그랬더니 예상했던 대로 70MB/s 중 후반을 왔다 갔다 하며 요동치지 않고 꽤나 안정적인 속도를 보여 준다.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가격이 모든 것을 일단 용서하는 데다, 플래터 위에 파일이 기록된 위치에 따라 속도에 편차가 있는 HDD와는 달리 같은 속도를 지속적으로 뽑아 주니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SSD로 바꾼 이후 처음 구동하는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로딩 시간이 HDD보다도 오래 걸리지만, 부팅시간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한두 번 재실행을 하면 원래 속도를 되찾는다. 시스템에 저장된 읽기 Cache를 Re-Build 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혹시 이 부분에 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있다면 코멘를 남겨주시길 부탁드린다.

과정요약.. 이지만 요약같지 않은….  [큰 흐름 – HDD의 내용물을 그대로 SSD에 복제 – 물리적으로 맞교환 – 재부팅]- 1. 외장하드 케이스를 이용해 SSD를 맥북에 연결 – 2. JHFS로 SSD 포맷 – 3. 디스크 유틸리티를 통해 부트 파티션을 가능한 한 작게 축소(복구 이미지의 용량을 줄이기 위해) 4. 복구모드로 재부팅 – 5. 복구모드의 디스크 유틸리티에서 부트 파티션을 통채로 DMG이미지로 백업 – 6. HDD와 SSD를 맞교환 – 7. DMG이미지를 SSD에 복구 – 8. 복구모드에서 터미널 실행 – 9. 명령어를 이용해 시스템 보호모드 끄기 – 10. SMC/NVRAM 리셋 – 11. 재부팅 – 12. Trim 활성화

3만 원짜리, 피노컴의 P70s 128GB SSD. 추천하느냐고? 음.. 나야 뭐, 하드웨어 얘기를 글로 풀어내는 게 직업인 사람이니 글감을 위해 낼름 지르기는 했지만, 아는 사람이 새 걸로 산다고 하면 뜯어말리고 싶기는 하다. 이 제품은 신품 가격 기준으로 4만 4천 원인데 예산을 1~2만 원만 더 쓰면 삼성, 샌디스크, 킹스톤같이 검증된 회사의 보급형 120GB 모델들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삼성의 경우 같은 용량의 750EVO가 4만 원 후반, 850EVO가 6만 원대 중반에 팔린다. 게다가 중고로 4만 원, 6만 원 중반이면 각각 120GB, 250GB 용량의 840EVO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언제 꼬여서 뻑나든 상관없는 시스템이라면 모를까, 중요한 컴퓨터라면 2만 원 아끼려다 괜히 피 보지 말고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데이터가 요단강을 건널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교체하는 데에 돈이 드니까 말이다. 아직 스트레스 테스트를 건다든지 하면서 본격적으로 테스트해보지는 않았지만, 사실 나도 사용하면서 조금은 불안한 게 사실이다. 3만 원이란 가격이 저렴하기는 하지만, 검증되지 않았다는 위험을 떠안기에 2만 원이란 차액은 너무 가볍다.

다만, GB당 가격이 343원(중고 기준 234원)에 불과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약 1년 6개월 전에 내가 삼성의 840EVO 250GB 모델을 구매했을 때의 GB당 가격이 800원이었던 것에 비해, 절반 이하 혹은 1/4에 가까운 가격이니 말이다. 삼성의 경우엔 동급 후속 모델인 850EVO와 상위 라인인 850PRO는 GB당 각각 400원, 585원이라는 경이로운 가격 하락을 보여줬고, 오늘 예로 든 피노컴의 제품과 같이 GB당 400원 미만의 보급형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그리 신기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이는 그동안 발전 속도가 가장 더뎠던 저장장치의 속도와 성능 대비 가격이 아주 합리적인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며, 이는 개인이 가진 컴퓨팅 파워의 평균 자체를 끌어올리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플래시 기반 저장장치 기술이 일반 사용자 레벨에 널리 보급되었으니, 그 기술의 첨단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그로 인한 변화가 언제쯤 우리의 손에 들어오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