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곡식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발효된 곡식에서 우연히 얻어진 술을 계속 만들어낼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였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가 있다. 성경에도, 고대 그리스의 비극에도, 어느 한군데 빠지는 곳 없이 등장하는 술에 관한 언급. 그만큼 술은 인류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기호식품이다.

그런 인류의 발전에 역행하듯, 나는 술과 가까운 편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던 건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종교적인 이유, 또 다른 하나는 맛. 청소년기를 보내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지냈기 때문에, 스무 살이 넘어서도 꽤 오랫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었다. 게다가, 정제되지 않은 알코올의 맛에 더해져 기분나쁜 단맛이 끝맛으로 남는 소주는 내게 증오의 대상이었고, 요즘에도 여전히 가능하면 기피하는 주종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처음 제대로 마셨던 술은 와인이었다. 알코올을 입에도 안 대던 스무살 때에도, 당시 일하던 곳에서 가끔 조촐하게 가지던 와인파티에서만큼은 술을 피하지 않았다. 포도주는 기독교적으로 의미가 있는 술이라, 심리적 저항감이 낮기도 했고, 또한, 와인은 맛있었다. 음식이나 커피를 맛있다고 하듯, 술도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었다.

그 후 이태원의 바 주방에서 꽤 오래 아르바이트를 했던 여자친구를 만났고, 와인, 맥주, 진, 럼, 위스키, 보드카, 깔루아와 각종 칵테일에 소주까지 정복하며,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취향과 만족에 쓸 수 있는 돈이 늘어나면서, 처음으로 깊게 파 보았던 기호식품은 커피였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온 세계의 원두를 다 구해 마셔보며 다채로운 맛을 표현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유가 조금 더 많아지며 자연스레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나는 감각, 특히 청각과 미각에 있어 꽤 예민한 편이라, 커피 한 모금이면 원산지까지 웬만큼 알아맞히는 편인데, 그런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와인의 맛을 글로 표현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렇고, 와인은 커피와 참 닮았다. 원산지, 로스팅, 갈아낸 입자의 크기, 블렌딩과 추출 방법까지. 수많은 요소들이 어우려져 한 잔의 커피 맛을 만들기 때문에, 이 세상에 똑같은 커피는 없는데, 와인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두 병의 와인을 가져다 놓고 마셔보아도, 미묘하게 맛이 다르다. 커피의 다채로움에 푹 빠졌듯, 요즘엔 와인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기분과 재밌는 맛을 즐기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는 와인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맛을 상상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간단하고 분명하게 맛을 표현해볼까 한다. 소믈리에도 아니고, 와인 애호가 수준도 아닌, 그냥 조금 예민한 미각을 가진 일반인이 풀어내는 와인 리뷰랄까? 당당하게 술 마실 이유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건, 와인도 소주나 막걸리처럼 그저 술일 뿐이니 어려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 없다는 것, 그리고, 취향과 스타일만이 존재할 뿐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나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1~3만원대의 와인을 주로 소개해보려고 한다. 참, 누구나 같은 와인을 마셔볼 수 있도록(매장에 재고가 있다면), 소비자가격과 주소를 같이 표시할 예정이다. 신나는 술로그, 술밍아웃, 그리고 와인덕질을 시작해볼까 한다.

괜찮아, 와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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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Kim
김재일

안녕하세요, 크리에이티브 마케터 김재일입니다. 이런 흥미로운 글, 재밌게 신나게 즐겁게 앞으로도 계속 쓸 수 있도록, 잊지 말고 구독&라이크&공유 찍고 가시는 센스는 더 감사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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