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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그 밖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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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살의 꼬맹이부터 20대 청년이 되기까지, 우리는 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어려서부터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하고, 아예 외국에서 학교를 마치기도 한다. 사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역사상 가장 많이 배웠고, 가장 좋은 능력을 지닌 세대임에 틀림없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기이며,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가장 안정된 시기이고, 그러한 안정적인 토대 위에서 자라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와 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가장 큰 변화를 겪었던 30년을 사이에 두고 태어난 두 세대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오래된 생각이 신세대의 새로운 능력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으며, 가정 안에서의 조그만 세대갈등들이 모이는 것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국가의 경쟁력을 끌어내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어리고 잘난 것들이 기를 쓰고 해외로 떠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력 유출이니 배은망덕이니 말은 많지만 그건 잘못되거나 건방진 행동이 절대 아니다. 본인들의 능력을 마음껏 풀어낼 환경이 이 나라에는 없으니, 살 길을 찾아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뿐인데 그런 식으로 호도하다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요즘 젊은것들의 사표]라는 다큐멘터리가 화제다. 대기업을 다니던 신세대들의 사표. 그리고 그것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 사실 제각기 다른 이유들이 있기는 하지만, 서로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단지 살아온 환경과 배경이 달라서, 같은 일에 대해서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신세대의 입장에서 그들의 생각이 답답하고 맘에 안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속에는 분명 그들의 삶에서 배운 지혜와 경험에서 나오는 내공, 그리고 숨은 교훈들이 있기 마련이다. 배울 것들이 물론 많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 안에는 언제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들도 굉장히 많다. 다만, 나는 나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의 생각들 중에 ‘학교 졸업 후에 회사에 몸을 담아야만 한다’라고 여기는 것만은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돌아왔지만, 지금부터가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다.

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국가 주도의 대기업 몰아주기 정책이 먹혀들던 시기였다. 기업 주도의 성장, 그리고 그것을 통한 경제 발전계획은 아버지 박씨가 군사독재정권의 수장(난 그를 대통령이라 부르면 안 된다고 본다)으로 있을 때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경제의 규모가 크지 않고, 시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큰 기업들을 만들어 정부의 지원을 몰아주면 변화를 이끌 수 있을 만큼의 고용이 창출되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우리네 아버지 세대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기업의 성취가 개인의 성취인 것만 같은 직장생활을 해 왔다. 본인들이 사회발전이라는 명분 아래에서 착취당하는 것도 잊은 채로 말이다. 멀쩡하게 생긴 학교를 다니고, 멀쩡하게 생긴 회사에 들어가서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차가 생겼고, 집이 생겼고, 노후자금이라는 게 생겼다. 사회의 팽창기와 그들의 청년 시절이 맞아 들어갔을 뿐, 개개인의 능력이 좋아서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니다. 다만, 나무가 숲의 모양을 모르듯, 평생을 회사와 조직 안에 몸담아온 그들은 그들의 성취감 안에 갇혀 있고, 그 밖을 보지 못하고 있다.

사회는 바뀌었다. 아주 크게. 이제는 회사의 성취가 개개인의 성취와 맞아 들어가지도 않고, 기성세대가 누렸던 변화의 큰 바람도 사라져 버렸다. 전통적인 의미의 교육(졸업장과 그 가치)이 쓸모없어지고 있으며, 서류가 없다며 잘 알아주지 않았던 실전 경험이 오히려 커다란 강점으로 일어서고 있다. 계급이 무너져가던 조선 후기에 들어서 오히려 양반 계급에 대한 집착이 더욱 심해졌던 것처럼, 대학 학위에 대한 집착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얼마 전 지진을 겪으면서도 자주 떠오르던 단어인데, 이제는 학교나 기업에 기대어 성장하는 시대가 아니라 각자도생의 시대다. 사회 전체를 이어주는 하나의 시대정신도, 반드시 향해야 하는 올바른 방향도 없다. 말 그대로 다양성의 시기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욕구와 소비심리를 파고드는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시장은 어디에나 있으며, 수요를 제대로 찾지 않으면 어디에도 없다. 호텔 경영학과를 졸업하지 않아도 객실 4개짜리 에어비엔비의 호스트가 될 수 있으며, 영어를 전공하지 않았어도 유투브 등의 미디어를 통해 영어 강사가 될 수도 있으며, 개인 미디어가 떠오르면서 공채 연예인이 되거나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지 않아도 유명해질 수도 있다. 사회는 이제 대학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미 고스펙 위주의 신입사원들이 줄줄이 그만두고 나가는 것을 보며 대기업 인사팀의 채용 방침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 학교 졸업 취업 결혼 육아 – 의 흐름은 아주 넓어지고 다양해진 이 사회의 아주 좁은 한 부분일 뿐이다.

세상은 넓고 돈을 벌 기회도, 꿈을 이룰 기회도 많아졌다. 어른들의 얘기는 틀리지만은 않다. 그러나 틀린 것도 있다. 우리가 뭔가 재밌는 일을 저지르고자 할 때 그들이 우리를 막아 세우는 이유는, 무지에서 온 두려움 때문이다. 그들에게 세상의 전부는 학교와 직장과 가정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들의 두려움은 마치, 수평선 너머에는 큰 낭떠러지가 있다고 믿었던 중세 유럽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콜럼버스가 되어야 한다. 이 사회가 유연한 생각을 도입할 수 있도록, 기성세대에게 되려 자극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분명히 전해야 한다. 저 끝에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신대륙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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