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싱가폴/발리 촬영일정을 마치고 제주로 돌아오는 길은 꽤나 험난했다. 아니 사실, 이번 여행의 모든 비행일정은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목적지는 싱가폴과 발리 두 곳이었지만, 가고 오는 길에 3개의 다른 도시(서울, 베이징, 쿠알라룸푸르)를 들러야 했고 서울에서는 인천에 착륙한 다음 2시간 반 안에 김포에서 떠나는 비행기를 잡아 타야만 했다. 게다가 제주-서울-베이징-싱가폴-발리-쿠알라룸푸르-서울-제주를 잇는 7번의 비행은 두 번의 공항 노숙을 포함하고 있었다. 싱가폴에서 발리로 가는 일정과, 발리에서 쿠알라룸푸르와 서울을 거쳐 제주로 돌아오는 일정이 그랬다. 싱가폴 – 발리의 일정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지하철 막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해, 스타벅스에 앉아 자정부터 4시경까지 서너 시간정도만 기다리면 되는 일정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발리에서 귀국하는 길에 쿠알라룸푸르에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은 7시간 정도였다. 그러나 공항에 트랜짓 호텔이 있다는 것 정도만 간단하게 파악한 채로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호텔에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그러던 와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에어 아시아의 라운지. 들어가서 가격을 물어보니 79링깃이라고 했다. 한화로 약 2만원 정도. 트랜짓 호텔보다 훨씬 저렴했다. 게다가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오래 앉아있으면 배가 고플 테니 뭐라도 시켜 먹으면 그 가격이나 저 가격이나 비슷해지니 불편함을 무릅쓰고 굳이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제하기 전에 프런트 직원은 내게 한번 둘러보고 결정해도 된다면서 결정을 잠시 미룰 것을 권했다. 혹시나 내가 비즈니스나 퍼스트 스카이라운지를 기대하지는 않는 건지 걱정해서였을까. 내 뒤에 들어온 손님에게도 같은 것을 물어보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가격을 초과하는 서비스를 기대하는 손님들이 꽤나 많았구나 싶기는 했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이고, (회원 전용이 아니라)누구나 결제만 하면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인데도 여권과 티켓을 확인하는 건 조금 의아했다. 이용료를 결제한 후에 수건을 한 장 받아들고, 자리를 잡은 후에 내부를 둘러봤다. 두개의 층이 있었는데, 아래층에는 멀티 어댑터가 설치된 카페 테이블과 간단한 음식이 차려진 스낵 바, 그리고 샤워실이 딸린 화장실이 있었다. 위층엔 어둡고 아늑한 수면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잔디 느낌이 나는 부드러운 카펫 바닥에 커다란 쿠션과 Bean Bag들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서 이용하기 편리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발리를 떠나기 직전에 공항에서 저녁은 챙겨 먹었지만, 서너 시간정도의 비행을 마치고 나니 꽤나 출출했다. 다행히 스낵바에 꽤나 괜찮은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메인 메뉴로는 쌀밥과 말레이시아식 채소볶음이 있었고, 디저트로는 브라우니와 사과 두 종류가 준비돼 있었다. 탄산음료와 커피는 무료로 제공되었고, 캔맥주는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었다. 빵 몇 개를 접시에 담고 커피도 한 잔 내려서 자리로 돌아왔다. 

짐을 간단히 정리하고 노트북을 펼쳐서 쌓인 메시지들에 답장을 보내고, 잠시 미뤄뒀던 업무를 처리했다. 다행히 인터넷 속도도 만족스러울 만큼 빨랐다. 업로드 다운로드 모두 4~5MB/s 정도로 한국의 절반정도 되는 속도였고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엔 이 블로그를 개발중이었기 때문에 원격으로 서버에 접속해 CSS코드와 서버 최적화 작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새벽 두시즈음에 잠을 자러 올라갔던 것 같다. 알람은 아침 6시에 맞춰져 있었다. 쿠션 하나를 끌어다가 머리에 베고, 가방에 챙겨 두었던 후리스를 꺼내 담요 대용으로 덮고 잠을 청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나 깊게 잠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 알람이 울리자마자 깼기 때문에, 다른 게스트들을 깨우지는 않았다. 가방을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전날 받아 둔 수건을 들고 샤워실을 이용했는데, 크게 인상적인 것도, 특별히 불편한 것도 없는 일반적인 샤워실이었다. 온수도 잘 나왔고, 이른 아침이라 다행히 기다리는 줄이 없어서 마음도 편했다. 머리를 간단히 말리고 아침으로 준비된 샌드위치를 한두개 집어먹었다. 혹시 몇 시간 전에 먹었던 브라우니가 그대로 있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메뉴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듯했다. 출발하기 전에 프런트 직원에게 물어보니 탑승구까지는 약 10분정도 걸린다고 했다. 다만, 여유를 가지고 움직이기 위해 보딩타임 20분 전에 출발했는데 그게 꽤나 좋은 결정이었다. 환승 구역에서 탑승구로 이어지는 보안검색대가 아침부터 붐볐기 때문이다. 다행히 늦지 않은 시간에 게이트에 도착했고, 서울까지 무사히 잘 돌아올 수 있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의 에어 아시아 레드 라운지는 여행 중에 우연히 찾은 보물같은 느낌이었다. 여행 일정 중 쿠알라룸푸르 경유 일정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당신의 편안함은 소중하니까:D